[다락방 템플스테이] 대구 도림사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뀐다. 옛집들은 한옥이었고 지붕이 높아 천장을 덧대면 다락방이 뚝딱 만들어졌다. 삼각형의 비좁은 방들은 해가 뜨면 열기가 맨 먼저 닿아 따뜻했다. 반대로 해가 지면 온돌에 기댈 수 없으니 급속도로 차가워져 주거용으로는 부적당했다. 대신 지면의 습기가 올라오지 않아 주로 이런저런 집기와 잡동사니를 보관했다. 다만 짐짝 같은 인간들은 여기가 집이었다. 낮고 천한 하녀나 밖으로 내보여서는 안 되는 장애인 자녀들이 먹고 잤다. 절집에선 규율에 지친 어린 스님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결국 다락방은 고독이나 소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눈물 젖은 빵은 대개 다락방의 음식이다. 세월은 나 몰라라 흐르는데 나의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마음의 다락방은 당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잔뜩 웅크리고 숨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
도림사(주지 종현스님)는 다락방을 활용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주지 스님의 처소인 사운당(四雲堂)에 드넓은 다락이 차려졌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다양한 종류의 골동품과 고화(古畫)를 감상할 수 있다. 다락의 구석마다 7개의 쪽방을 설치해 극한의 수행인 무문관(無門關)을 체험해 보도록 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거의 다 채워지는 면적이다. 기획력이 탁월하다. 요일별로 이름을 붙였고 서로 다른 기물(器物)을 배치해 신비하고 적요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일요일의 다락방에는 백자 달항아리를 넣어 순백의 본성을 응시하게 했다. 청자 달항아리가 있는 월요일의 방에는 ‘블루 문(Blue Moon)’이 떠 있다. 화요일의 방은 중국 명나라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동 관음불과 500나한을 그린 병풍을 만나는 극소형 선방(禪房)이다. 수요일의 방에선 대롱거리는 비로자나 목불(木佛)과 청매화와 홍매화의 병풍을 보며 심신을 치유한다. 목요일의 방에선 오래된 목재 가구에 박힌 거울을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한다. 금요일의 방에는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맞이한다. 토요일의 방에선 청동 반가사유상이 기다린다. 각각의 방들은 어둑하지만 그윽하여 내면의 가장 먼 지점까지 더듬어볼 수 있다.
‘다락’의 추억 느끼며 명상 속으로
다락방은 슬프고 외로운 유산만은 아닌데 유년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달아나 어른들은 모르는 놀이를 하며 자신들만의 세계와 가치를 구축했다. 요즘에는 복층 오피스텔이 존재하지만 과거의 아파트는 전부 단층이었다. 국내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기는 1970년대부터이고 다락방을 경험해봤던 5060세대는 그 부재가 아쉽다. 그래서 도림사의 다락방은 장년과 노년층을 위한 선물이다. 아련하다 못해 흔적으로만 목숨을 부지하는 날들을 되돌려 세울 수 있는 특별한 반추의 기회다. 본디 무문관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수행이니 일반인들은 도림사의 다락방에서 대략 30분만 있다 나온다. 참선을 해도 좋고 책을 봐도 좋고 그 무엇을 해도 좋다. 온전히 내가 되는 일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정화(淨化)가 될 테니까. 나와 맞지 않는 타인이든, 내게 비협조적인 현실이든, 나를 싫어하는 미래이든, 온갖 불순물들을 털어내는 시간이다. 종현스님에 따르면 누군가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갔다. 그의 오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의 잠재적 오열도 만만치 않으니 그저 멀리서 공감할 뿐이다.
‘행복’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도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12대 종정을 지낸 도림 법전대종사(1925~2014)를 기리는 사찰이다. 조계종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의 전설이며 화두를 들고 한번 자리에 앉으면 좀체 일어서지 않아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을 얻었다. 종단의 위상과 저력을 상징하는 큰스님 외에도 수많은 영가(靈駕)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이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명절이 오면 수만 평에 달하는 경내가 승용차들로 바글바글하다. 열반이 아니었어도,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죽음은 다독여져야 하므로 그 번잡은 불편하지 않다. 법전대종사는 한국불교의 거목인 성철스님 아래서 공부했다. 성철스님은 선가의 고전인 <증도가>를 공책에 베껴쓰라며 건넸고 법전스님은 특유의 끈기로 부지런히 써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성철스님은 증도가의 한 구절인 군불견(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을 그대로 법전스님에게 물었다. 제자는 “내게 군불견을 묻는다면 당신의 등을 차버리겠다”며 호쾌하게 기봉(機鋒)을 펼쳐보였다. 이미 도를 알고 있다는 뜻이며 법전스님이 스승에게서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내려받게 된 사연이다. 아스라이 팔공산의 산세가 여유롭고 묵직하게 일렁이는데 문득 나는 왜 아직도 서성여야 하는가 싶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안다. 산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한 일인데. 내가 살고 싶은 만큼 남도 살고 싶은 것이어서 그 삶은 녹록지 않다. 남이 나를 침탈해야만 행복할 수 있을 때는 도무지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9월7일 도림사의 템플스테이는 선(禪)명상 템플스테이였다. 선명상은 말랑말랑하게 연성화하고 실용화한 간화선이고 기대되는 간화선이다. 명상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떼 지어 찾아와 행복을 찾아다녔다. 포교국장 종엄스님이 지도하면서 차를 내주었다. “행복을 위해 출가했다”고 답한 스님의 승랍은 20년을 향해 간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는 돌발질문이 나왔다. 스님도 인간이어서 “반쯤 불행하기는 하다”면서도 스님은 스님이어서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들어내는 겁니다. 기다리면 안 오고, 쫓아가면 사라져요.” 엄밀히 말하면 기다리니까 더 안달을 내려 안 오고, 쫓아가니까 더 몸값을 높이려 사라지는 것이다. 과일도 당뇨를 유발하고 달콤함은 어떤 식으로든 유해하다. 세상이 제공하는 행복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며 심술궂고 비열하다. 내가 나의 본질인 것은 모르겠으나 책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화가 나면 내가 가라앉히고, 울적하면 동네 한 바퀴라도 내가 뛰고 와야 한다. 사랑에 배신당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어떻게든 기뻐하면서.
아름다운 향기를 입다(1박2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사찰 안내 및 스님과의 차담, 선명상, 108배 등
찾아가는 길
내비게이션 주소: 대구 동구 인산로 242 도림사
KTX 동대구역 → 대구 지하철 1호선 아양교역 2번 출구 → 버스 401번(평일) 팔공2번(토 일 공휴일) 탑승 → 도림사 도착
문의: (053)981-7276
예약: www.templestay.com